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(문단 편집) === [[성전]]에 입문하다 === 바그다디의 친구 아부 알리에 따르면 그가 성전, 즉 [[지하드]](جهاد)를 하게 된 계기가 매우 사소한 것이었다고 한다. 2003년에 미국이 [[사담 후세인]](صدام حسين)의 [[이라크]](العـراق)를 침공하자 후세인과 같은 종파이자 침공 이후 권력을 잃은 많은 수니파들이 미국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. 그러자 이브라힘 알 바드리의 집주인이자 바그다드에 있던 성원의 주인이었던 사람이 이브라힘보고 자신이 가입한 신생 이슬람 정당에 가입하자고 권유를 하였다. 허나 정당은 비종교적이라고 생각했던 바그다디가 이를 거절했고, 그 뒤 집주인과 바그다디 사이의 갈등이 커져서 바그다디는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. 이브라힘은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그의 전공인 이슬람 율법 샤리아 박사 학위를 살려서 수니파 무장 단체 '자마아트 자이시 아흘 알 순나'와 알 자마아트[* 'جماعتِ جيش أهل السنة والجماعة, 수니파 군사 회의.] 안에 있는 샤리아 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미군한테 붙잡혀서 2004년 2월부터 12월까지 [[이라크]] 남부 시아파 도시 [[바스라]](البصرة)에 있었던 부카 강제 수용소(Camp Bucca)에서 생활하였다. 그는 그곳에서 [[바트당]](حزب البعث العربي الاشتراكي) 이라크군 포로들을 만났고 그들과 친해졌다. 바그다디가 부카 강제 수용소에서 만났던 이라크군 장교들은 훗날 그가 이라크 이슬람국가의 아미르(أمير, 사령관)로 재직할 때 수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. 이 점이 이브라힘을 이전의 지도자들과 다르게 만들어줬다. 저들은 미군이나 신생 이라크군 기지를 습격할 줄은 알았지만 점령할 줄은 몰랐다. 만약 바그다디 치하의 이라크 이슬람국가마저 습격만 하고 점령할 줄 몰랐더라면 이들은 국가가 아니라 떠돌이 무장 단체 혹은 테러 단체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. 하지만 바트 당 출신 장교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브라힘의 이슬람 국가는 영토를 점령하고, 또 그 점령지를 탈환하려는 정부군으로부터 점령지를 지켜낼 수 있게 되었다. 사실 2004년까지만 해도 이브라힘은 서른이 조금 넘은 청년에 불과했던 데다가 총을 잡고 싸우는 무장 단체 대원보다는 그냥 사이비 이슬람 학자의 성향이 더 강했기 때문에, 미국 국방부는 그를 테러범으로 분류하는 대신에 그냥 민간인 수용자로 분류했다. 그리고 그는 10개월 만에 감옥에서 석방되었다. 당시에는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었기 때문이다. [[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|그러나 이후 본격적으로 악이 깨어나게 된다.]] {{{#!wiki style="margin:16px 0 24px 16px;float:right;width:20%;max-width:400px;"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Mujahideen_Shura_Council_Iraq_logo.jpg|width=100%]]}}} 이브라힘은 감옥에서 나온 뒤에 전사들의 협의회(مجلس شورى المجاهدين)라는 무장 단체들의 연대 조직에 가입했다. 전사들의 협의회는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주도한 [[알 카에다]] 조직과 현지 저항 조직들이 힘을 합친 곳이었다. 그는 거기에서도 전공을 살려서 율법 해석과 자문을 맡았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-5px -10px;"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500px-Flag_of_the_Islamic_State_of_Iraq_and_the_Levant2.svg.png|width=100%]]}}}||{{{#!wiki style="margin:-5px -10px;" [[파일:external/www.understandingwar.org/AQI%20December%202006.jpg|width=100%]]}}}||{{{#!wiki style="margin:-5px -10px;" [[파일:external/www.understandingwar.org/AQI%20December%202007.jpg|width=100%]]}}}||{{{#!wiki style="margin:-5px -10px;"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Al_qaeda_in_iraq_and_sunni_insurgents_march_2008.jpg|width=100%]]}}}|| 알 자르카위 사망 이후에 전사들의 협의회가 이라크 이슬람국가 건설을 선포하자 거기에서는 이라크 이슬람국가에 속한 각 주들이 율법을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. 또한 이브라힘은 이라크 이슬람국가의 아미르였던 아부 우마르 알 바그다디에게 충성 맹세를 했고 사마라와 디얄라에 살고 있었던 자신의 부족원들에게도 충성 맹세를 권하였다. {{{#!wiki style="margin:24px 0 0 16px;float:right;width:30%;max-width:500px;font-size:.9em;" [[파일:external/2.bp.blogspot.com/Kuffar+allege+Sheikh+Abu+Omar+al-Baghdadi+and+Sheikh+Abu+Hamza+al-Muhajir+martyred,+display+photos+-+Ansar+Al-Mujahideen.png|width=100%]][br]브리핑 진행자는 [[이라크]] 전 총리인 [[누리 알 말리키]].}}} 2010년에 아부 우마르 알 바그다디가 미군과 이라크군의 합동 작전으로 전사하자 이브라힘이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라는 가명으로 이라크 이슬람국가의 아미르(총사령관)가 되었다. 2012년에 [[시리아 내전]]이 발생하자 그는 자신의 부하들 중에서 [[시리아]] 출신 대원들을 불러 모은 다음 그들을 시리아로 보냈다. 이들이 만든 조직이 바로 [[알 누스라 전선]]이다. 알 누스라 전선은 그 뿌리가 뿌리인지라 [[알라위파]] 포로들을 전부 참수하는 만행을 선보여서 [[자유 시리아군]]까지 욕 먹게 만들었다. 어쨌든 정부군과 자유 시리아군이 점령하지 못한 시리아 영토들은 알 누스라 전선이 점령하게 되었다. 한편 2013년에는 이라크에서도 시아파 총리인 [[누리 알 말리키]]의 폭압 정책에 반발하는 수니파들의 반정부시위가 일어났고, 이라크 수니파 지역의 무장 투쟁은 더 거세졌다. 바그다디는 알 누스라 전선의 영토가 탐이 나서 알 누스라 전선이 이라크 이슬람국가의 일부였다고 선언한 뒤 알 누스라 전선과 이라크 이슬람국가를 일방적으로 통합시켰다. 그러자 한때 바그다디의 부하였던 알 누스라 전선 총사령관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는 이에 반발하면서 알 카에다 총사령관 [[아이만 알자와히리]]에게 일러바쳤고, 알 자와히리는 알 바그다디보고 그만 하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알 바그다디는 이를 무시하고 알 누스라 전선 군대를 공격했다. 결국 알 누스라 전선은 조직원의 8할과 시리아 동부의 라카와 데이르 알 조르 등을 내주고 시리아 북서부로 쫓겨나고 말았다. 그리고 그 8할의 조직원들은 전부 이라크 이슬람국가가 흡수했고, 이라크 이슬람국가는 나라 이름을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로 갈아치웠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